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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복원은 자연살리기 _중부매일신문(12.1)
 작성자 : 최고관리자
Date : 2014-12-11 11:56  |  Hit : 1,375  



중부매일과 지역사회 문화학술활동 활성화 협약을 맺은
 중원포럼(이사장 김성청)의 제80회 학술발표회가 지난달 28일 청주시 상당구 우민아트센터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박시룡 한국교원대 교수의 '황새, 자연에 날다라'는 주제강연이 있었다. 18년 동안 황새복원에 힘써온 박 교수는 "황새는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야만 서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황새의 멸종은 인간생명의 터전인 자연의 멸종이며, 황새의 복원은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의 복원, 즉 사람살리기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황새야생복귀사업은 건강하고 풍요로운 자연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창대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특히 1971년 황새 절멸이후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체계적으로 추진한 일본의 황새 복원 프로젝트를 살펴보면서, 황새 야생복귀사업으로 얻는 환경적, 경제적, 그리고 교육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의 정부, 지자체, 민간의 동참을 바탕으로 한 복원사업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한국교원대 생물교육과 교수이자 황새생태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박 교수는 '동물행동학의 이해', '술취한 코끼리가 늘고 있다', '와우, 우리들의 동물친구', '과부 황새 그후', '열려라! 양서류 나라' 등의 저서 외 수많은 우여곡절을 끝에 야생으로 복귀할 황새 150마리의 복원사업의 과정을 담은 '황새, 자연에 날다(박시룡 외 3인 공저·지성사)'를 최근 발간했다. 박 교수의 주제강연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우리나라 텃새, 황새는 왜 사라졌을까?

이 땅에 몸 전체는 하얗고 날개깃과 부리가 검은 기품 넘치는 새가 살았다. 그 새는 저 깊은 으슥한 숲이나 높은 산이 아닌,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풍광 좋은 마을의 아름드리나무에 둥지를 틀었다. 크기는 1m이며, 날개를 펴면 무려 2m에 이르는 당당하고 멋진 새는 아름드리나무에서 내려와 논밭이나 저수지 둔덕 얕은 물에서 먹이 사냥을 했다. 사람들은 그 새를 '큰 새'라는 뜻으로 '한새'라 불렀다가 이윽고 '황새'가 되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에 둥지 틀고 새끼들을 낳아 보살피던 황새는 그 추운 겨울에 새끼들과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갔다가 이듬해 봄이면 어김없이 옛 둥지로 찾아와 다시 새끼들을 낳고 키운 우리의 텃새였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쟁으로 우리의 산하는 황폐해졌고, 마을의 수많은 아름드리나무가 사라짐에 따라 황새들도 둥지를 잃었다. 어느 누구도 황새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또 그렇게 살 수도 없던 시절에 황새는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서, 그리고 삶에서 차츰 잊혀갔다.
 


먹고살기에 팍팍한 시절, 주린 배를 채우려면 쌀 생산을 늘려야 했다. 농경지를 정리하고 벼 품종을 개량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살포하고 벼를 쑥쑥 자라게 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뿌렸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고 했던가. 쌀 생산량은 눈에 띄게 늘어났으나 농약과 농경지 정리로 자연논에서 살던 수많은 생물이 사라지고 마을의 수호새처럼 여겼던 황새 또한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1971년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서 둥지 틀고 살던 황새 한 쌍이 발견되었지만(4월 1일), 발견되고 난 뒤 사흘 만(4월 4일)에 밀렵꾼의 총에 맞아 수컷이 죽고 말았다. 이 황새 한 쌍이 바로 우리나라 마지막 텃새 황새였다. 과부황새가 된 암컷은 무려 12년 동안 해마다 옛 둥지를 찾아와 무정란만 낳았을 뿐이고, 끝내 1983년 농약에 중독돼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과부황새는 주민에게 발견돼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이후 회복되어 지내다가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 텃새에서 완전히 사라진 황새는 이제는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가 되었다. 국제자연보존연맹은 황새를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해 국제적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18년간 황새 야생복귀의 발자취를 더듬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1996년 러시아와 독일에서 황새를 들여와 마침내 우리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황새를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1996년 10월, 한국교원대 자연과학관 옆(현재 응용과학관) 약 30평의 사육동에서 한반도 황새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새끼 2마리, 독일 발스로데 포겔파크에서 온 황새 2마리가 전부였다. 대학 안에 황새번식 시설을 허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때 시설면적은 100㎡ 정도였지만, 현재 1만여 ㎡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당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육사도 없이 학교에서 파견한 근로 장학생이 사육사를 대신했다. 사육비라고는 실험실습비로 책정한 10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시설을 갖추는 것에서부터 사료비 그리고 연구비에 들어갈 비용 등 황새복원사업을 시작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금이 필요했다. 어떻게 자금을 마련해야 할지 막막했으나 교원대 교수협의회에서 교수들에게 모금을 벌여 사료비를 보태주었고 학교에서는 실험실습용 목적으로 100㎡ 남짓한 사육장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황새복원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명맥을 이어갔고, 이 사업을 후원해주는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힘을 얻어 마침내 올해 6월 13~18일에 황새 60마리를 예산군으로 황새 귀향행사를 치르기에 이르렀다. 결코 짧지 않은 18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마침내 야생으로 복귀할 황새 150마리가 탄생했다.

◆이 땅 모두의 소망을 싣고 다시 날자꾸나!

황새복원연구센터에서는 지난날 황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살았던 황새 서식지들을 중심으로 황새 야생복귀 서식지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그 옛날 황새들이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던 그 많은 곳들에 이미 골프장,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어 도저히 황새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당시 황새 번식지로 유명했던 충남 예산군 광시면을 둘러본 결과, 비록 주변에 송전탑이 세워져 있기는 했지만 경기도나 충북처럼 난개발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황새 야생복귀 거점지역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이곳 황새마을에 예산황새공원이 들어섰고, 주민들은 황새와 더불어 살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농약을 쓰지 않는 황새 생태농사를 짓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황새생태농업연합회를 결성해 황새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가 살게 하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또 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황새 생태농업을 실시했다. 주민들이 직접 도정하여 포장까지 한 '황새 춤' 쌀은 우리 생태농업의 첫 수확물이었다.

자연생태계가 되살아나면 어디 황새만 되살아나겠는가? 무분별한 개발과 온갖 오염으로 신음하는 우리 한반도가 되살아나는 일이 아니던가.

황새복원은 건강한 자연생태계의 복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망가진 자연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어느 열정적인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물 한 방울이 모이고 모여 강을 이루듯 자연을 가꾸고 지키려는 굳센 의지들이 하나로 뭉쳐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의지를 실현하려면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충북도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반도 황새복원사업에 관심을 가져주길 간절히 바란다. 자연을 되살리는 작업에 어떤 형태로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송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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